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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내 몸 안에 의사가 있었습니다

by 원장 이란 2022. 11. 17.

내 몸 안에 의사가 있었습니다

 

이○○ 1970년생 여성

 

율본운동 체험수기 '행복한 체험' 中 발췌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주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내가 암에 걸릴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8시간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무통주사도 효과가 없을 만큼 아팠고, 수면제를 먹어도 2시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아직 어린 두 아이를 위해 꼭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견뎠습니다.

 

다행히 입원 14일 만에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밥은커녕 죽조차도 두 숟가락 이상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투에 가까운 12회의 항암치료를 마쳤습니다. 유난히 심했던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무사히 극복하자 , 이제 살았다!’란 안도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의학적 치료가 끝난 암 환자들이 불안한 마음에 미친 듯이 산으로 간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나 역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혹시 재발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감이 밀려왔고 그 불안감은 우울증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저는 가위 눌림이라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 같은 환자들에게는 잠이 보약인데 우울증과 가위 눌림으로 잠을 잘 수 없다 보니 회복은 더뎠고,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와서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율본운동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율본과의 만남을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하지만 그때는 선뜻 내키지 않았습니다. 수련 첫 시간, 크게 울리는 징소리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심장은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버텼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징소리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더니, 원장님의 징채를 뺏어 내가 징을 한 번 쳐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이게 무슨 감정이지?’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합장한 두 손바닥 사이로 알 수 없는 기운이 들어왔고 손가락 마디가 툭툭 소리를 내더니 그 간격이 아주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 내 몸이 왜 이러지?’ 어느새 두 팔은 점점 간격을 넓히면서 양쪽으로 벌어졌고, 벌어진 팔이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더니 꺼이꺼이서러움에 북받친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답답했던 속이 후련해졌습니다. 다시 팔 운동을 반복하다 잠시 멈추고는 목이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변변치 않은 내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아주 세심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운동을 시켜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내 몸에서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내 운동을 살펴보신 원장님께서 왼쪽 어깨에 문제가 있고 골반이 틀어졌다 하셨습니다.

 

나의 왼쪽 어깨 통증은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불편한 동거를 한 친구입니다. 발뒤꿈치로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은 고통은 생활이 되었습니다. 물리치료를 포함해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평생 불구로 살아간다는 생각으로 그냥 체념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어깨 못지않게 나를 괴롭혔던 골반의 뒤틀림으로 다리는 항상 저렸고, 허리 통증으로 바른 자세로 앉아 있기도 일어나기도 힘들었습니다. 열심히 수련하면 나을 수 있다는 원장님의 희망적인 말씀과 함께 첫날 수련이 끝났습니다.

 

이틀 후 두 번째 수련, 허리 통증으로 항상 등을 벽에 기대야만 했던 나는 일명 양반다리를 한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신기하게도 공포로 느껴졌던 수련 첫날의 징소리는 자장가처럼 포근하고 들렸습니다. 그날 밤, 내 삶의 절반을 고통 속에 놓이게 했던 가위 눌림이 종지부를 찍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징소리 음반을 틀어놓고 누웠는데 눈을 뜨니 아침이었습니다. 수면제를 먹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가위 눌림의 고통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공포에 질려 살려 달라고 고함을 질러 보지만 그 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를 온몸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의학적으로는 방법이 없다고 하니, 궁여지책으로 칼과 가위를 베개 속에 넣고 자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나의 고통이 작은 딸에게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밤마다 벌벌 떨면서 베개를 들고 달려오는 아이에게 혹시나 해서 징소리 음반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날 밤 이후 아이는 아주 편히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어느 덧 수련 7개월이 되었습니다. 내 몸 안의 의사는 내가 대장암 환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나의 복부를 어루만져주고 따뜻한 기운을 넣어줍니다. 나의 어깨도 날개를 단 듯이 가벼워졌다가 다시 약간의 통증이 있는 반복 치유 과정을 너무나 열심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나는 징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습니다. 머지않아 내 몸 안의 의사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건강한 몸을 만들어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만약 율본을 만나지 못했다면, 암이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가위 눌림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의학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하루 빨리 내 몸 안의 의사를 만나 나와 같이 자유와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