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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자연치유의 스위치를 켜라

by 원장 이란 2022. 11. 15.

자연치유의 스위치를 켜라!

 

 

병명도 없고 치료제도 없다?

 

 

제도권 의료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

 

제도권 의료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학으로서, 다양한 원리를 가진 의학을 포괄적으로 수용하여 모든 국민들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의료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제도권 의료는 과연 이 조건을 충족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제도권 의료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현대의학이라 불리는 서양의학, 그리고 전통의학인 한의학이다. 현대의학은 국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반면에 뒤늦게 제도권 의료에 포함된 한의학은 현대의학의 막강한 그늘에 가려 실질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제도권 의료로 질병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 고통의 근원에는 편향적인 의료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에겐 의료 서비스의 선택권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의학이라는 인위적인 치료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다. 그런데 현대의학이 인체의 본능적 치유 능력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가 갖고 있는 본래의 치유 능력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데, 그 기회조차 주지 않는 의료 정책이 과연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끝없이 닥터 쇼핑을 하는 이유

 

 

지금도 주변에서 질병의 고통은 있지만,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소위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검사라는 검사는 다 해보지만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정상 상태라는 것이다. 병이 없으니 당연히 증상을 완화시킬 약도 없다.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하나 마나 한 처방과 함께 신경안정제, 진통제, 수면제를 처방한다. 일시적이나마 그것으로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그 고통을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더 길게는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으로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이 하나 더 만들어지면 고통을 해결할 길은 더욱 요원해진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자신의 수입에 비례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여야 한다. 이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병이 났을 때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아울러 국가는 다양한 의료 시스템을 통해 건강한 삶을 제공할 의무를 가진다. 그런데 꼬박꼬박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도 병든 몸을 맡길 의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지금부터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내 이웃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소리기공이란 것을 처음 시작할 때이니 꽤 오래 전 일이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갈등하던 때이기도 하다. 그때 한 사람의 치유 과정을 지켜보면서, 현대의학에 편향된 의료 정책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에 참담함을 느꼈다. 갈등을 겪던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질병에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나의 모든 삶을 받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사례>병명을 못 찾았던 40대 남자의 이야기

 

그의 나이는 40대 초반, 직업은 대형 화물차 기사였다. 언제부터인가 속이 답답하더니 점점 식욕이 떨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일이 힘들어 그런 것이라 생각하여 보약과 건강식품을 사서 먹었지만, 점점 식욕이 떨어지더니 급기야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병원에서 검사라는 검사는 다 했지만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힘들면 정신과 치료를 해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지만 약을 복용하면 잠이 와서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었고, 정신이 혼미해져 일상생활조차 이어가기 어려웠다.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복용하던 약을 모두 끊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자신의 병이 의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귀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해 용하다는 무속인을 찾아다니며 굿을 했고, 많은 돈을 없애고 난 뒤에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쯤 나와 인연이 되었다.

 

그의 하소연에 따르면, 잘 먹지 못하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는데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운전을 하다가 아니면 잠을 자다 호흡이 정지되면 죽을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가장으로서의 절박감 때문인지 그는 소리기공에 강한 믿음을 보였고, 그런 믿음 덕분인지 치유 과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그의 입에서 쌀뜨물 같이 뿌연 타액이 쉼 없이 토해졌고, 항문에서 가스가 쉼 없이 나왔다. 구토가 심해서 복부의 장기가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희한하게도 구토한 용기에는 뿌연 타액만 있을 뿐 한 톨의 밥알도 없었다. 타액의 배출은 복부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반드시 거치는 치유 과정이지만 당시 나에게는 충격적인 현상이었다. 가스가 배출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입에서 쏟아지는 타액은 도대체 무엇일까? 심한 구토에도 왜 음식물을 올리지는 않는 걸까? 그렇다면 식도가 아닌, 타액이 나오는 통로가 따로 있는 것일까? 그날 밤 잠을 설치며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수련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집에서도 계속 타액을 토했다고 한다. 힘들만도 한데 그는 휴지와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뻐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타액의 양도 조금씩 줄어들었으며, 타액을 배출할 때도 온몸을 웅크리는 불편한 자세가 아닌 아주 편안한 자세로 바뀌었다.

 

수련 1개월이 넘어갈 즈음, 타액은 토하는 수준에서 단순히 뱉는 정도가 되었다. 수련 2개월이 되자 그는 하루하루 숨 쉬기가 편해졌고 식욕도 회복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타액에 대한 의문점은 풀리지 않았지만, ‘! 이렇게 병이 고쳐지는 구나!’라는 원리를 터득할 수 있었다. 그와의 만남은 하늘이 무지한 나에게 질병이 시작되고 치유되는 원리를 알려주기 위해 주신 기회라는 내 멋대로의 해석을 하며 신이 났었다. 그 후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살고 있노라고 감사의 인사를 몇 년 동안 꾸준히 전해 왔던 그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인연 중 하나이다.

 

 

현대의학이 해결하지 못한다고 솔직히 고백해야

 

이 사례처럼 의학적로는 이상을 발견할 수 없음에도 잘 먹지도 못하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부분 복부에 탁기(냉기)가 과도하게 쌓여, 복부의 장기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복부를 만져보면 몹시 차갑고 딱딱한 기운이 뭉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복부의 탁기가 가슴까지 밀려 올라오게 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이 동반된다.

 

내 몸 안의 의사가 실행하는 셀프운동은 우선 기()의 열기로 복부에 딱딱하게 굳어 있는 탁기를 액체 상태로 녹인 다음 입으로 배출시키고, 복부의 가스는 항문을 통해 빠져 나오게 한다. 병의 경중에 따라 이 과정이 다소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몸이 실행하는 운동 프로그램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아주 쉽게 치유되는 질병에 해당된다.

 

위의 사례처럼 질병의 고통으로 일상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한데 병원이 말하는 것처럼 이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현대의학의 한계로 원인을 찾아낼 수 없는 것일까? 전인후과(前因後果)란 말이 있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뒤따른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질병의 증상이 있다면 그 증상을 만들어낸 원인이 반드시 존재한다. 원인 없는 질병은 없다.

 

현대의학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현대의학으로 어떤 질병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면, 그 질병은 현대의학의 치료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의미한 치료로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키거나 불치의 병으로 단정 짓는 모순을 범하는 것은, 현대의학만이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지극히 독선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일이다.

 

 

신경성, 스트레스성이라는 핑계

 

 

병원에서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치료 방법 또한 없다면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신경성, 심인성, 혹은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애매모호한 진단이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해결할 수 없는 질병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사람들이 현대의학 이외의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모든 사람들이 편히 잠든 밤을 공포와 고통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날씬한 몸매를 만들겠다며 밥을 굶는 사람들 옆에서 한 끼라도 제대로 먹어 보기를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 역시 현대의학으로는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푸라기 잡듯 현대의학에 의지하는 것은 마땅한 의료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 함께 건강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헌장은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및 영적 안녕이 역동적이며 완전한 상태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며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나누는 한 몸(一體)으로, 이 둘이 함께 건강할 때 비로소 인체는 완전한 상태가 된다. 나는 건강하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단순히 육체적 이상이 없다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서, 정신과 육체가 균형을 이루는 최적의 상태를 이루어야 한다.

 

육체의 병이 정신의 병을 만들어내고, 정신의 병이 육체의 병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건강을 위해서라면 정신과 육체의 문제를 제각기 다른 문제로 분리시킬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육체적 문제에 대해서는 온갖 첨단 의료 장비와 다양한 약제를 제공하고 있지만, 정신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의료 서비스는 매우 부족하다고 보아야 한다.

 

과거와 비교하기도 어려울 만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그와 반비례해서 급증하는 정신적 문제들에 당면해 있다. 정상적인 사람의 건전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참담한 범죄들이 거의 매일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들의 범죄 행위를 철저히 처벌하는 것은 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향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나는 지난 세월 정신적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고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개인의 힘으로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육체가 병들면 의료 시설을 찾듯이, 정신이 병들고 상처 입었을 때에도 문제의 본질을 반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의료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질병에 있어서도 무조건 증상을 잠재우기 위해 독한 약제를 퍼붓고 수술을 하는 폭력적 방식이 아니라, 분노를 풀어내고 영적으로 다독이는 자연치유 요법이 필요하다. 정신적 문제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이 그들을 점점 더 음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