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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내 몸 안에 치유의 의사가 있었습니다

by 원장 이란 2023. 4. 2.

내 몸 안에 치유의 의사가 있었습니다

 

장○○ 1970년생 여성

율본운동 체험수기 '행복한 체험' 中 발췌

 

20177, 불행하게 나는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대장암 3진단을 받았다.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일이 실제 나의 일이 되고 보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고 사형통보를 받은 것과 같은 참담함이었다.

 

평소 지병이 있어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내가 암에 걸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여느 암환자들처럼 나 역시 암환자들이 겪는 심리 5단계를 겪었다.

부정, 분노, 원망, 좌절, 타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데 까지는 나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이었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8시간의 수술을 받았다.

그 통증은 무통주사도 효과가 없었을 만큼 강했고 수면제를 먹어도 2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하루에 3시간씩 피주머니를 찬 채 병원 복도를 걸어 다니며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꼭 살아야 된다는 일념으로 견뎌냈다. 다행히 입원14일만에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밥은커녕, 죽조차도 두 숟가락 이상 먹을 수 없다 보니 몸무게는 줄어들었고 복부는 부어올라 꼭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 E.T 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항암치료가 시작되었고 사투에 가까운 12회의 항암치료도 무사히 마쳤다.

! 이제 나는 살았구나.” 유달리 심했던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무사히 극복해 준 내 자신과 함께 힘들어 하고 배려해 준 남편과 아이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의학적 치료가 끝난 암 환자들이 불안한 마음에 미친 듯이 산으로 간다는 말이 실감났다. 나 역시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건강을 지켜나가야 할 것인지, 혹시 재발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불안감이 밀려 왔고 그 불안감은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에게는 의학적으로는 치료방법이 없는 밤의 공포 가위눌림이라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나 같은 환자들에게는 잠이 보약인데 우울증으로 잠을 못자고, 가위에 눌려 잠을 못자다 보니 회복은 더디기만 하였고, 수면부족으로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두통이 있어 진통제와 보너스 주어진 위장약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20185, 고통 속에서 헤매는 나에게 율본운동이라는 구원의 손길이 뻗쳤다. 지금은 율본과의 만남을 나를 제대로 살게 하려고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하지만 그때는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실한 내 몸을 생각하면 무엇이라도 받아 들여야 하는 절박감이 있었기 때문에 체험 수련에 참석하였다.

수련 첫 시간, 크게 울리는 징소리는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심장은 쿵탕쿵탕 방망이질을 하였다.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두려움 때문에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괜찮아, 괜찮아나를 안심시키고 또 달랬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징소리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더니 원장님의 징채를 뺏어 내가 한 번 실컷 쳐 보고 싶은 충동까지 느껴졌다. 이게 무슨 감정이지? 의문과 호기심의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지런히 합장한 두 손바닥 사이로 바람 같은 알 수 없는 기운이 들어왔고 손가락 마디가 툭툭 소리를 내더니 그 간격이 아주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 내 몸이 왜 이러지? 어느새 두 팔은 점점 간격을 넓히면서 양쪽으로 벌어졌고, 벌어진 팔이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더니 꺼이꺼이서러움이 북받친 울음이 터져 나왔고 울고 나니 그간의 힘든 시간들을 위로 받은 듯 답답했던 속이 후련해 졌다. 울음을 멈추고 다시 팔운동을 반복하다 잠시 멈추고는 다시 목이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변변치 않는 내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아주 세심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운동을 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내 몸에서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내 운동을 살펴보신 원장님께서 나의 왼쪽 어깨가 문제가 많고 골반이 틀어졌다 하셨다. 어떻게 아셨을까?

 

나의 왼쪽 어깨통증은 1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불편한 동거를 한 친구이며, 나는 이 친구 덕분에 발뒤꿈치로 짓누르는 듯한 고통이 생활화 되었다. 물리치료를 포함하여 나름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했지만 효과가 없어 평생 불구로 살아간다는 생각으로 그냥 체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 못지않게 나를 괴롭혔던 골반의 뒤틀림으로 다리는 항상 저렸고, 허리통증으로 바른 자세로 앉아 있기도,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열심히 수련하면 나을 수 있다는 원장님의 희망적인 말씀과 함께 첫날의 수련은 무시무시한 공포에서 행복한 기다림으로 끝을 맺었다.

 

이틀 후 두 번째 수련, 오늘은 또 어떤 운동을 할까? 기대에 부풀었다.

 

허리통증으로 항상 등을 벽에 기대야만 하는 나는 일명 양반다리를 한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다. 나는 이 사실만으로도 기쁨에 벅찼다. 신기하게도 수련 첫날의 공포의 징소리는 자장가처럼 포근하고 들렸고, 나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운동을 하다 말고 단잠을 자는 행복함 속에서 두 번째 수련은 끝을 맺었다.

 

그날 밤 내 삶의 거의 반을 고통 속에 놓이게 했던 가위눌림이 종지부를 찢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수련 회원들에게 지급되는 징소리 음반을 켜 놓고 누웠는데 눈을 떠니 아침이었다. 드디어 나도 남들처럼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도 심신이 휴식을 취하는 행복한 밤을 보냈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괴롭혀 왔던 가위눌림의 고통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의식은 깨어 있으나 온 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기운으로 손가락 하나 까닥 할 수 없고, 공포에 질러 살려 달라고 고함을 질러 보지만 그 소리는 입 밖으로 퍼져 나오지 않은 채 숨이 막힐 듯한 공포를 온 몸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의학적으로는 수면부족이 원인이라 하나 불면증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칼과 가위를 베개 속에 넣고 자고, 또 잠을 자지 않고 버텨 보기도 하고, 수면제를 복용하며 가위눌림의 고통을 피해 보려 하였으나 그 어떤 방법도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작은 딸에게도 이어 졌다.

 

밤마다 벌벌 떨면서 베개를 들고 우리 방으로 달려오는 아이를 겨우 달래 잠을 재우지만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뿐이었고 엄마로서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와 같은 효과를 기대하며 아이에게 징소리 음반을 들려주었다. 그날 밤 아이도 나처럼 가위에 눌리지 않고 편이 잠을 잤고, 그 이후 지금까지 편한 잠을 자고 있다.

 

어느 덧 수련 7개월이 되었다.

 

내 몸 안의 의사는 내가 대장암환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나의 복부를 어루만져 주고 따뜻한 기운을 넣어 준다. 그리고 그 덕분에 복부도 많이 편해 졌고 나의 어깨도 날개를 단 듯이 가벼워졌다가 다시 약간의 통증이 있는 반복치유과정을 너무나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지금도 나는 징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으며,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는 행복한 밤을 만들어 준 율본운동은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 하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 몸 안의 의사는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건강한 몸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고 있다.

 

만일, 율본운동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나는 내 몸 안에 의사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한 채 암이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가위눌림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암환자들에게는 의학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학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나와 같은 암환자들은 의학적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할지라도 내 몸 안의 의사를 찾아 암치료후의 불안감을 해결하기를 당부한다. 그리고 가위눌림이라는 의학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 몸 안의 의사를 통해 자유로움을 얻기 바란다.

 

오늘도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내 몸 안의 의사가 나를 치유하는 율본으로 향한다.